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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어요. 그냥 자꾸 땡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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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댓글 13건 조회 4,858회 작성일 11-01-05 23:12

본문

 나는 담배를 잘 피우지 못한다. 호기심에 몇 번 손을 대어봤지만, 그것이 주는 매캐함이 결코 유쾌하지는 않았던 것. 그래서 나는 남들이 피우는 담배를 구경하는 편인데, 그것이 밝을 때보다도 어두울 때가 더 좋다. 낮에는 하얀재에 가려 보이지 않던 붉은 빛이 밤에는 무척이나 선명한 것이다.  그런고로 나는 담배를 잘 피우지 못하면서도 남들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담배 피우듯 습관적으로 구경을 한다. 

 12월 중순이었을 게다. 그녀를 만난 것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충동적 호기심과 비슷한 감정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고, 안고 싶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베르나르가 한 책에서 묘사한 그 같은 황홀경을 맛보고 싶다는 다소 공상적인 착각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외로웠다. 
 채팅 창에 온된 그녀는 24살이라고 했다. 나는 서울 강동구에 살고 있고, 그녀는 경기도 성남시에 살고 있다고 했다. 아직 차가 없는 나로서는 부득이 밤 10시를 지날 시점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었다. 설레기도 했고, 그녀가 안 나왔을 때 안겨들 허기 같은 공허를 대담스레 상상해보기도 했다. 하여튼 나는 외로웠다.

 8호선 수진역에서 내려, 스타돔이라는 제법 시끌법적한 나이트를 지나치자, 학생들 붐비는 건너편 틈에서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내가 갈까 네가 올래'하는 짧은 제스처를 취했다. 그녀가 웃는다. 나도 웃었다. 그리고는 오직 둘만이 있을 수 있는 공간으로 물 흐르듯 이동했다.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하룻밤을 모르는 사람과 보낸다는 건 여전히 스트레스였다. 물론 좋아서 선택한 행동이었지만, 긴장감에 나는 남모르게 몸을 떨어야 했다. 내가 씻고, 뒤이어 그녀가 씻었다. 커다란 흰색 수건을 전신에 감은 그녀는 턱 끝으로 침대를 가리켰지만, 나는 왠지 내키지 않아 탁자의 의자를 끌어당겼다. 그녀의 옅은 한숨소리. 그리고는 예상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뭐, 별건 아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2시간 넘게 토크를 했다. 남녀가 반 벌거벗은 채, 그것도 중한 일을 치르지 않고 토크를 하다니, 별 일도 다 있네? 싶겠지마는, 어쨌든 그 말도 안 되는 분위기를 우리는 흥미롭게 영위해나갔다. 그 사이 시킨 맥주가 올라왔고, 우리 둘의 얼굴은 시나브로 빨개졌다. 혀가 꼬부라질 정돈 아니였어도, 이성과 초자아가 자아내는 검열의 순간을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새엄마,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낳은 배다른 동생과 같이 산다고 했다. 어렸을 적에는 엄마와 같이 살았는데, 엄마와 아버지가 이혼한 이유는 엄마의 바람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의 바람은 집 밖에서 뿐 아니라 집 안에서도 펼쳐졌다고 했다. 그녀가 8살 무렵이었던가, 하루는 자다가 목이 말라서 방에서 마루로 나왔는데, 엄마와 어떤 외간 남자가 알몸으로 뒤엉킨 장면을 생생히 목격했다고 한다. 엄마의 눈과 딸의 눈이 순간 마주쳤지만,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미소만 짓더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참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방으로 되돌아왔다고 했다. 

 그녀는 엄마가 밉다고 했다. 아버지가 다시 자기를 거두고, 얼핏 보기엔 화목한 가정에서 지금은 살아가고는 있지만, 새엄마와의 관계는 역시 만만찮다고 했다.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를 듣던 내가 '그럼 왜 나를 만났죠?'라고 되물어봤다. 나 말고도 대행은 여럿 해봤다고 한다. 돈이 궁한 것도 아니었다. 엄마의 그런 모습 때문이라도 이런식의 만남이 싫지 않을까, 옅게 생각했던 나는 그러나 그녀의 말 한마디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을 그녀와 나란히 누웠다가 그 공간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물론 나 혼자서.

 건물 밖에 위치한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려던 찰나 그녀가 있는 곳을 히뜩 바라봤다. 창문 속에서 그녀가 말없이 웃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생하다.

"모르겠어요. 그냥 자꾸 (남자가) 땡겨요."

말을 하던 내내 말보로를 피우던 그녀의 담배불은 내가 속한 그 어두운 공간에서 새빨갛게 명멸했다.







- X5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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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 작성일

왠지.. 가슴이 좀 먹먹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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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 작성일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모르겠어요. 그냥 자꾸 (스시가)땡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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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둥이님의 댓글

*** 작성일

여자분에겐 쉽지 않은.. 힘든 상황이셨을텐데...

글 참 잘 쓰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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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 작성일

맞고 사는 엄마를 둔 아들이, 난 저렇게 안할꺼야 하면서 똑같은 폭력가장이 되는.. 그런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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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월신군님의 댓글

**** 작성일

길바닥에 허기진 강아지처럼 널브러진게 여자찾는 남자들인데...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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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 작성일

가슴 아픈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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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 작성일

좀.. 뻘짓하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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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레몬님의 댓글

**** 작성일

좀 맘이 안좋다 나이도 어리신분이..안타까울뿐..가정사두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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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 작성일

단옹.....그렇게 심오한 말을......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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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 작성일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사연이 시박에 존재 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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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 작성일

모전 녀전....남자가 땡기는거.....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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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댓글

***** 작성일

남자가 땡겨?? ...여자도 남자가 땡기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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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님의 댓글

*** 작성일

흠...그냥 혼자 나오신거? 그분은 창문에서 지켜보고계셨던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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